
교회소식
2026년 5월 10일
예배 및 목회
• 교회에 처음 오신 분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교회력]: 부활 후 여섯 번째 주일 & Mother’s Day
(행 7:55~60/ 시 31:1~5, 15~16/ 벧전 2:2~10/ 요 14:1~14)
•중보기도회: 매 주일 오전 9시 30분~10시 20분
•수요기도회: 5월 13일(수) 오전 10시 30분
• 주중기도회: 5월 13일(수) & 5월 8일(금) 저녁 8시~9시 교회본당
• 찬양팀연습: 5월 16일(토) 오전 10시 30분
• 직원회: 5월 17일(다음 주일)
• Youth Camp: 2026 Mount Zion Camp (문의: Jesse Chambers)
1차: June 28 ~ July 5 / 2차: July 6 ~ July 12
소식
• Happy Mother’s Day!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을 축복합니다.
Mother’s Day를 준비한 교육부에 감사를 드립니다.
• 몸이 아픈 성도님들을 위해 함께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 예배 시작 후, 자모실 이용을 자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5월 생일자: 김지원(5/21), 김영미(5/26), 허정원(5/30)
축하하고 축복합니다.
• 5월 찬양곡: [주를 바라보며]
목회서신
[함께읽기] 시선이 머물러 있어야 할 곳 [광야, 창조의 시간] 이규현 [6]
마음을 읽는 기술을 가르쳐 주는 곳은 없다. 사람들은 드러난 것에 관심이 많다. 표면적인 것을 가꾸기는 싶다. 내면보다 외면적인 것에 더 몰두하면 후유증이 따른다. 내면의 방치는 위험한 미래를 예고한다. 마음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시끄러운 일상보다 요란한 마음이 문제다. 나를 돌본다는 것은 마음을 포옹하는 일이다.
다윗에게 밧세바 사건은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다. 외적 성공에 도취할수록 내면은 파산 상태가 된다. 성공을 자축하는 파티가 벌어질 때 위험은 상승된다. 이루어 낸 결과물이 곧 자신이라는 착각은 금물이다. 사람들의 박수와 환호가 클수록 자아를 잃어버린다. 외적인 것이 강조될수록 영적 감수성은 죽고 종교화되어 간다.

종교는 외적 활동의 강화다. 자신의 힘에 의존한 활동 일색이다. 하나님에 관련된 일은 하지만 하나님과는 관련없는 사람이 많다. 하나님이 시키지 않으신 일에 열심이다. 예배 활동은 하지만 예배는 없다. 신앙이 일상의 삶 안으로 스며들지 못하면 화석화된다.
신앙과 삶의 이중성을 ‘외식’이라 부른다. 외식주의적 신앙처럼 무서운 것은 없다. 행위만 화려하게 돌출된 신앙은 영적 세계에 적신호다. 외식에 익숙해지면 신앙에 고뇌가 없어진다.
영성 생활은 영적 체험과 구별된다. 체험은 한두 번이 특정한 사건에 관심을 갖지만 영성 생활은 일상 속에서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이다. 일시적으로 겉으로만 타는 불이 아니라 내면에서 조용히 계속 타올라야 한다. 위에서 임하는 능력도 열망해야 한다. 단번에 타는 불이 아니라 깊이 뿌리를 내리고 견고함을 얻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어떤 일을 하는가?’, ‘얼마나 열심히 사역하고 있는가?’, ‘어떤 직책을 맡고 있는가?’는 주된 관심사가 아니다. 시선이 머물러 있어야 할 곳은 마음이다. 마음의 기류 저층에서 흐르는 것을 읽어 내는 섬세함이 필요하다. 외적인 완성은 쉽지만 성화의 과정은 길고 긴 싸움이다. 내적 변화를 위한 치열한 싸움을 해 본 사람이라면 마음의 탐사를 게을리할 수 없다. 가장 치열한 전쟁터는 마음이다. 마음의 전쟁터에서 승자가 되어야 한다.
마음을 가꾸지 않는 사람들의 특징은 피상적 삶을 산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통제하려고 한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미워하기보다 그를 통해 나를 바꾸시려는 하나님의 의도를 찾아야 한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꾸어야할 나의 마음을 응시해야 한다. 드러나 현상보다 자기 마음의 해부가 급선무다. 마음이 더러워져 있으면 내가 하는 모든 것이 더러워진다. 마음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를 제거해야 한다.
나와 관계하고 있는 사람들과 잦은 충돌이 일어나는 이유가 있다. 겉으로는 열심히 하고 칭찬도 듣지만 실제로는 벼랑 끝일 수 있다. 내면을 다루지 않고 방치한 결과는 자신의 몫이다.
자신에 대한 통찰이 우선이다. 내가 나를 모른다는 것이 치명적이다. 나에 대한 통찰이 약해지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깨달음이 무디어진다. 영성이 깊어지면 깨달음이 깊어진다. 다른 사람보다 자신의 내적 자아를 보는 민감성이 높아진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에 눈이 열려야 한다.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라고 말씀하셨듯, 하나님은 중심을 꿰뚤어 보신다.
하나님 앞에 서면 중심이 노출된다. 마음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불필요한 심리들은 하나님의 검색대를 통과하기 어렵다. 바울은 속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갈 4:19).
변화의 대상은 겉이 아니라 속이다. 마음에 대한 민감성을 개발해야 한다.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있느냐보다 그리스도와 건강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확인해야 한다. 열심히 순종하고 있는외적 모습 이전에 내적 순수함과 선한 동기들을 확인해야 한다. 선한 일을 하고 있지만 내 안에 일고 있는 시기와 다툼과 분노의 마음을 다룰 줄 알아야 하나님이 머물러 계시는 마음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