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소식
2026년 9월 13일
예배 및 목회
• 교회에 처음 오신 분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 [교회력]: 오순절 후 열여섯 번째 주일
(출 14:19~31/ 창 50:15~21/ 시편 114, 103:8~13/ 롬 14:1~12/ 마 18:21~35)
• 부서장 모임: 친교 후, 교육부실
• 정기직원회: 9월 20일(주) 예배 후
• 중보기도회: 매 주일 오전 9시 30분~10시 20분
• 수요기도회 : 16일(수) 오전 10시 30분 [출애굽기]
• 주중기도회: 16일(수) & 18일(금) 저녁 8시~9시 교회본당
• 찬양팀연습: 19일(토) 오전 10시 30분
• 제2회 성결선교학교: 9월 1일 ~11월 12일 온라인 ZOOM 10주 과정
매주 목요일 오후 8~9시 30분 (참가비: US100)
소식
• 귀한 말씀을 전해주신 채대신(Nathaniel Chae) 선교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 특별새벽기도회가 은혜롭게 마쳤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얼굴을 우리 자녀들에게
비추어 주시기를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 남전도회 주최 선교 골프대회가 은혜롭게 마쳤습니다.
남전도회 회장님을 비롯한 수고하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 몸이 아픈 성도들과 여행중인 성도들을 위해 함께 기도해 주세요.
• 9월 생일자: 홍성호(9/16), 김혜진(9/17), 허정훈(9/24)
축하하고 축복합니다.
• 9월 찬양곡: [우리의 예배(This is our worship)]
[함께읽기] 영혼을 경작하는 일 [광야, 창조의 시간] 이규현 [25]
영성은 외형보다 내면을 가꾸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영혼의 꽃을 피우는 일이다. 내적인 충만함이 중요하다. 영혼의 성장에 집중하지 않으면 겉모양은 시들게 되어 있다. 내면이 외적인 것을 결정한다. 상황의 혼란보다 내면이 흔들리는 것이 항상 문제다.
내면을 방치하지 않고 지속해서 가꾸어야 한다. 가꾸지 않은 밭은 잡초로 무성해진다. 심지 않은 데 나는 것은 잡초뿐이다. 경작은 땀을 흘려야 한다. 풍성한 결실을 위해 부지런히 경작하고 가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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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둘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시 126:5~6씨가 중요하다. 말씀의 씨가 내면에 뿌려질 때 생명의 역사가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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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골 3:16
받아들이는 토양 역시 중요하다. 연토가 되어야 한다. 딱딱한 토양은 씨를 받아들일 수 없다. -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약 1:2
좋은 밭이란 겸손하고 유순한 마음이다. 가르침을 잘 받아들이면 성장은 자연스럽다.
영혼을 경작하는 일은 일상이어야 하고 일평생의 작업이어야 한다. 경작하다가 중단하면 땅은 곧바로 황폐해진다. 영혼을 세워 가는 일은 힘든 작업이지만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영혼을 세워 가려면 외적 활동 중심보다 내면에 집중해야 한다. 활동, 사역,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면을 충실히 가꾸는 일이다.
신앙이 외적으로 기울 때가 많다. 교회 출석, 기도회 참석, 소그룹 참석, 구제 활동에 참여하는 것 등 모두 귀중한 일이다. 그럼에도 개인적 영성이 결여된 외적 활동은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배가 파도를 견뎌 내고 항해를 하려면 드러난 부분보다 보이지 않는 부분이 더 중요하다. 겉은 화려한데 속이 부실하면 위험하다. 먼 항해를 위해서는 내부 구조가 충실해야 한다. 겉은 좀 투박해 보여도 내구성이 강하면 된다.
예수님 시대 바리새인들은 외향은 훌륭했지만 실제로는 부실했다. 영혼을 건강하게 세우는 일보다 우선되는 것은 없다. 돌보지 않으면 영적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외적 환경이 너무 좋아졌다. 풍요가 주는 향응에 취하다 보면 영혼을 돌보는 일을 소홀히 할 가능성이 높다. 사람들은 이전보다 휠씬 더 깊은 공허에 시달리고 있다. 영적으로도 풍요로워 보이는 세상이다. 세미나와 집회가 많이 열리고, 좋은 책들도 쏟아져 나온다. 명설교들도 언제든지 접할 수 있다. 그럼에도 영적 공허함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외적인 것에만 매달린 결과다. 영의 만족을 위해 쉼 없이 영적 우물을 길어 올려야 한다.
창세기 26장에서 이삭이 했던 일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들이 우물을 메워 버렸다. 우물은 생명과 직결된다. 이삭은 그 우물을 다시 찾아 복원하는 일을 했다. 전혀 새로운 우물을 파기보다 이전에 우물이 있던 곳을 찾아 돌맹이를 걷어 내고 물을 길어 올렸다.
영적 세계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무엇을 찾으려고 하기보다 기독교의 전통 속에서 믿음의 선진들이 누렸던 것들을 찾아보면 답을 얻는다. 깊은 우물에서 길어 올린 물과 카페인으로 가득한 음료는 전혀 다르다. 순간적 갈증 해소보다 깊은 만족을 얻어야 한다.
기독교 영성의 우물을 파면 풍성한 것들이 많다. 믿음의 순례길은 나만 홀로 가는 외로운 길이 아니다. 영적 세계는 깊고도 깊다. 얕은 곳에서 안주하려고 해선 안 된다. 피상성을 경계해야 한다. 영적 건조함이나 고갈이 느껴진다면 깊은 것보다 탁한 물들만 돌이켜 온 결과다. 깊어지지 않으면 식상해진다.
영성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깊은 관심을 갖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이 성숙시켜 나가는 것이 신앙의 축이 되어야 한다. 성령은 깊은 곳으로 이끌어 주시는 영이다. 깊어지지 않으면 신앙은 곧 굳어진다. 신앙의 심화 작업은 매 순간 꾸준히 일어나야 한다. 모래 위가 아닌 반석 위의 집을 짓기 위해....
